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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토리] 헬기 애칭에 인디언 이름이 쓰인 까닭은?

신인호

입력 2020. 04. 02   15:56
업데이트 2020. 07. 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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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토리] 이름으로 보는 헬리콥터와 인디언 (1)


미 육군, 헬기애칭으로 원주민 부족명 사용 규정

인디언 전사의 상무정신 계승하려는 뜻 담아 

6·25전쟁 중 후송임무 수행한 H-19에 '수'족 이름 부여

공격헬기에는 코만치 등 기마전투 부족명 사용


최강의 공격헬기인 AH-64에는 미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제로니모가 이끌었던 아파치족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사진은 AH-64E 아파치가디언이 대한민국 육군에 최초 도입 당시 모습.
최강의 공격헬기인 AH-64에는 미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제로니모가 이끌었던 아파치족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사진은 AH-64E 아파치가디언이 대한민국 육군에 최초 도입 당시 모습.


가뜩이나 파괴적인 무기체계의 이름이 단순히 영문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만 불린다면 참으로 딱딱하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기체계에는 무기의 특성을 살리거나 친근감 있는 상징명칭(애칭)이 공식적으로 부여되고, 또 운용하는 부대나 장병들 사이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별도의 애칭이 쓰이는 예가 많다.

항공기로서 고정된 날개(고정익)가 아닌 회전 날개(rotor)를 이용해 비행하는 헬리콥터(helicopter)에서도 흥미로운 애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미 육군이 운용하는 헬리콥터에는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칸 원주민(native american)’의 부족이나 용맹한 전사의 이름을 따 명명한 사례가 눈에 띈다.


시팅불이 이끈 라코타족과 미 기병대의 전투를 그린 기록화. 사진 = 위키피디아
시팅불이 이끈 라코타족과 미 기병대의 전투를 그린 기록화. 사진 = 위키피디아


미 육군의 헬기에는 대체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나 지도자의 이름이 애칭으로 부여되어 있고(미국에서는 공문서에 아메리카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쓰지 않고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이라고 표기한다) 또 그렇게 작명하도록 규정화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미 육군이 헬기를 처음 도입할 당시부터 인디언과 관련된 이름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1942년 미 육군이 최초로 대량생산에 의해 도입, 운용한 시코르스키의 R-4헬기는 호버플라이(Hoverfly)라는 비교적 온화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 헬기가 비록 1944년 버마 전선에서 구조임무를 수행한 최초의 헬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때만 해도 헬기가 군사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못했고 ‘지형을 이용하며 전장을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헬기가 군사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을 통해서였다. 미국 벨(Bell)사가 개발한 H-13은 전선을 누비며 사상자 후송하는 등 구조와 후송작전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공중기동을 위한 유용한 무기체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헬기에 바로 ‘수(Sioux)’라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어 미 육군에 도입되는 헬기에 쇼니, 쵸토, 치카소 등의 부족 이름이 잇달아 부여되면서 이것이 1950년대 미 육군 헬기 애칭 작명의 전통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베트남전을 통해 의외의 현상이 벌어졌다. 부족 이름이 부여되는 관례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로쿼이(Iroquois)’라는 이름이 붙은 UH-1 헬기가 장병들 사이에서는 휴이(Huey)로 더 많이 불렸다. 공격헬기로서 투입된 AH-1에는 휴이코브라(Huey Cobra)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전투와 공격을 위한 무기체계 성격에 맹금류의 이름이 적절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관례에서 크게 벗어나 의아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UH-60에 이르러서는 부족명이 아닌 소크(Sauk)족의 전투추장으로 전설적인 전사로 이름이 높은 ‘블랙호크(Black Hawk)’가 부여됐다.

하지만 그 이후 카이오와(Kiowa), 샤이엔(Cheyenne), 코만치(Comanche), 라코타(Lacota)의 예에서 보듯 부족의 이름을 애칭으로 쓰는 방향으로 회귀하는 경향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흥미로운 것은 코브라 이후 ‘공격’ 헬기에는 아파치나 코만치처럼 기마 전투로 용맹성을 날린 부족의 이름을 붙여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평원에 솟은 리치모어산에는 리틀빅혼전투를 승리로 이끈 크레이지 호스이 조각되고 있다. 사진 = 크레이지호스기념관 홈페이지
대평원에 솟은 리치모어산에는 리틀빅혼전투를 승리로 이끈 크레이지 호스이 조각되고 있다. 사진 = 크레이지호스기념관 홈페이지


미 육군은 헬기에 왜 인디언과 관련한 이름을 쓰고 있을까. 대체로 미군은 적에 대항해 용감히 싸운 인디언 전사들에 대해서 항상 높이 평가해 왔고, 이러한 인디언 전사들의 상무정신을 계승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되어 왔다.

그럼에도 최근 이것이 인종차별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의 의구심도 여론의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스포츠에서는 원주민과 관련된 명칭이 인종차별의 한 부분으로 인정돼 시정되는 예가 잇따르고 있다. 비영리단체 보스톤크리틱(Critic)에서 발행하는 ‘보스톤 리뷰(Boston Review)’의 편집장 사이먼 왁스맨(Simen Waxman)은 2014년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미군 헬리콥터에 원주민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죄의 부담을 덜어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선전’‘기만’이라며 이를 삭제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군측은 무기체계나 부대에 원주민 부족 또는 지도자 이름을 쓰는 것은 ‘존경’의 뜻을 담는 것이며 원주민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2년 미 육군이 LUH-72 기종에 ‘라코타’ 이름을 부여하고 명명 행사를 가졌을 때, 원주민들이 참석해 서로 격려한 사실은 좋은 사례로 전해지고 있다.


■ [밀토리] 이름으로 보는 헬리콥터와 인디언(2)

    ☞  블랙호크, 코만치, 라코타 등 존경 뜻 담아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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